월급은 작년보다 올랐습니다. 그런데 살림살이는 나아진 것 같지 않고, 집은 더 멀어졌습니다.
기분 탓이 아닙니다. 돈의 총량이 내 소득보다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숫자로 보겠습니다.
목차
은행 앱의 숫자는 ‘현금’이 아닙니다
통장에 찍힌 500만 원은 금고 어딘가에 지폐 500만 원이 쌓여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은행이 당신에게 그만큼 갚겠다고 적어 둔 기록입니다.
그래서 통계는 ‘돈’을 범위별로 나눠 셉니다.
| 지표 | 무엇이 들어가나 | 2026년 5월 잔액 |
|---|---|---|
| 본원통화 | 한국은행이 실제로 공급한 돈(현금 + 지급준비금) | 309.5조원 |
| M1(협의통화) | 현금 + 수시입출금 통장 — 바로 쓸 수 있는 돈 | 1,398.2조원 |
| M2(광의통화) | M1 + 2년 미만 정기예적금 + CD·RP + 수익증권 등 | 4,184.4조원 |
| Lf | M2 + 2년 이상 예금, 보험 준비금 등 | 6,309조원 |
은행 앱에서 보는 입출금 통장 잔액은 M1, 여기에 정기예금·적금까지 더하면 M2입니다. 흔히 “시중에 풀린 돈”이라고 할 때 가리키는 것이 M2입니다.
309조 대 4,184조 — 나머지는 누가 만들었나
위 표에서 눈에 걸리는 숫자가 있습니다.
- 한국은행이 실제로 공급한 돈: 309.5조원
- 시중에 도는 돈(M2): 4,184.4조원 — 약 13.5배
차액 3,875조원은 조폐공사가 찍은 것이 아닙니다. 은행이 대출을 하면서 만들었습니다.
은행이 돈을 만드는 방법
은행은 예금으로 받아 둔 돈을 그대로 빌려주는 창고가 아닙니다. 대출을 승인하는 순간, 빌린 사람의 통장에 숫자를 적어 넣습니다. 그 숫자가 곧 새 예금이고, 새 예금은 M2에 더해집니다.
그럼 은행은 무한정 찍을 수 있을까요. 여기서 지급준비율이 나옵니다. 한국은행법 제55조·제56조에 따라, 금융기관은 예금의 일정 비율을 한국은행에 예치해야 합니다.
| 예금 종류 | 지급준비율 |
|---|---|
| 장기주택마련저축, 재형저축 | 0.0% |
| 정기예금, 정기적금, 상호부금, 주택부금, CD | 2.0% |
| 기타예금(수시입출금 등) | 7.0% |
100만 원을 예금받으면 2~7만 원만 남기면 된다는 뜻입니다. 나머지는 대출로 나가고, 그 돈은 다시 어느 은행의 예금이 되고, 또 대출로 나갑니다. 이 반복이 신용창조입니다.
다만 “지급준비율의 역수만큼 늘어난다”는 설명은 절반만 맞습니다
교과서는 준비율이 10%면 최대 10배라고 가르칩니다. 이해를 돕는 비유로는 좋지만, 실제 순서는 반대에 가깝습니다.
은행은 준비금을 먼저 쌓아 두고 대출하지 않습니다. 먼저 대출해서 예금을 만들고, 필요한 준비금은 나중에 시장이나 중앙은행에서 조달합니다. 그래서 대출을 실제로 제약하는 것은 준비금보다 자기자본 규제, 차주의 상환능력(DSR), 그리고 금리입니다.
실제 숫자도 그렇습니다. 2026년 4월 통화승수는 13.61배로, 준비율만 놓고 계산한 이론상 최대치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돈을 푼다’는 말의 실제 경로
정부는 지폐를 찍지 않습니다. 돈이 늘어나는 경로는 대체로 셋입니다.
- 재정지출 —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고, 그 돈을 지원금·공사대금으로 지급하면 민간 통장에 예금이 생깁니다.
- 금리 인하 — 대출이 싸지면 은행 대출이 늘고, 대출이 늘면 예금이 늘어납니다.
- 은행 대출 자체 — 위 두 가지보다 규모가 큽니다. 예금은행 가계대출 잔액만 1,189.4조원(2026년 6월 말)입니다.
그래서 “정부가 돈을 푼다”는 표현은 절반만 맞습니다. 실제로 2026년 5월 M2 증가 32.2조원을 이끈 것은 기업의 단기 자금이었고, 같은 달 가계 부문은 오히려 줄었습니다. 돈을 만드는 주역은 대체로 은행과 대출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왜 내가 가난해지나 — 속도 차이입니다
돈이 늘어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내 소득이 그보다 느리게 는다는 것입니다.
| 항목 | 증가율 | 기준 |
|---|---|---|
| M2(시중 통화량) | +5.8% | 2026년 5월, 전년동월 대비 |
| M1(바로 쓸 수 있는 돈) | +10.0% | 2026년 5월, 전년동월 대비 |
| 명목임금 | +3.4% | 2026년 1분기 |
| 실질임금 | +1.3% | 2026년 1분기 |
이 격차를 시간에 넣어 보면 체감이 분명해집니다. 연 5.8%로 늘면 약 12년 만에 돈의 총량이 두 배가 됩니다(72의 법칙). 같은 12년 동안 실질임금이 연 1.3%씩 오르면 1.17배가 됩니다.
돈은 두 배가 되는데 내 구매력은 1.17배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상대적으로 뒤로 밀립니다.
물가는 안 올랐다는데 집값은 왜 오르나
여기가 가장 중요한 대목입니다.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집값을 담지 않습니다.
- CPI에는 전세·월세는 들어가지만 기존 주택의 매매가격은 빠져 있습니다.
- 자가주거비는 보조지표로만 따로 공표되고, 주지표에는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통계청은 2026년 12월 가중치 개편 때 포함 여부를 검토 중입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생깁니다. 늘어난 돈이 라면과 버스요금으로만 가면 CPI가 오르고 금리 인상으로 제동이 걸립니다. 그런데 돈이 주택·주식 같은 자산으로 흘러가면 CPI에는 거의 잡히지 않습니다.
통계상 “물가는 안정적”인데 집은 계속 멀어지는 상황이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실질임금은 CPI로 조정한 값이라, 자산 가격이 오른 만큼의 손해는 실질임금 통계에도 잡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산 가격이 오르면 같은 집을 사는 데 더 큰 대출이 필요해지고, 그 대출이 다시 M2를 늘립니다. 순환입니다. 대출 한도가 어떻게 정해지는지는 주택담보대출 한도 LTV·DSR 계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통화량, 직접 보는 방법
남의 해석을 거치지 않고 원본을 볼 수 있습니다. 무료입니다.
-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접속합니다.
- 통화 및 유동성지표 → 주요 통화금융지표를 엽니다.
- M1·M2·Lf·본원통화를 월별로 조회하고 그래프로 볼 수 있습니다.
매월 한국은행이 「통화 및 유동성」 보도자료를 내는데, 두 달 전 수치가 그때 확정됩니다. 5월 수치가 7월 중순에 나오는 이유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M1과 M2 중 뭘 봐야 하나요?
둘 다 의미가 다릅니다. M2는 전체 유동성의 크기를, M1은 그중 당장 움직일 수 있는 돈을 보여 줍니다. M1이 M2보다 빠르게 늘면(2026년 5월 M1 +10.0% vs M2 +5.8%) 사람들이 돈을 묶어 두지 않고 대기시키고 있다는 신호로 읽습니다.
통화량이 늘면 금리는 왜 내려가나요?
돈도 수요와 공급을 따릅니다. 빌려줄 돈이 많아지면 돈의 값인 금리가 내려갑니다. 반대로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면 대출이 줄고, 대출이 줄면 새로 생기는 예금도 줄어 통화량 증가가 둔해집니다. 예금금리 비교가 시기마다 달라지는 배경입니다.
은행이 망하면 제 예금은요?
예금자보호제도가 있습니다. 다만 보호 한도가 정해져 있고 금융회사별로 적용되므로, 한도와 적용 대상 상품은 가입 전에 확인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그럼 지금 무엇을 사야 하나요?
이 글은 구조를 설명하는 글이지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자산 가격은 통화량 말고도 공급, 인구, 정책, 금리에 함께 좌우되고 하락한 시기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다만 “돈의 총량이 내 소득보다 빨리 는다”는 사실 자체는 판단의 출발점으로 알아 둘 만합니다.
돈을 안 풀면 되는 것 아닌가요?
통화량이 줄면 대출이 막히고 기업이 무너지며 실업이 늡니다. 그래서 중앙은행의 목표는 0%가 아니라 완만한 증가입니다. 문제는 총량이 늘어난다는 사실이 아니라 속도, 그리고 늘어난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가입니다.
📌 함께 보면 좋은 글
참고 자료
- 한국은행 — 「2026년 5월 통화 및 유동성」(2026.7.15 발표), 본원통화·통화승수, 지급준비제도
- 국가법령정보센터 — 한국은행법 제55조(지급준비금의 예치 등)·제56조(지급준비율의 결정 등)
- 통계청 — 소비자물가조사(자가주거비 및 주택 매매가격 처리)
- 고용노동부 — 사업체노동력조사(2026년 1분기 명목·실질임금)
이 글은 공식 통계를 정리한 정보성 글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수치는 발표 시점 기준이므로 최신 값은 한국은행 ECOS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